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투글루크 왕조 (문단 편집) === [[피루즈 샤 투글루크]] === 무함마드가 [[신드]] 주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다가 1351년 사망하자 투글루크 왕조의 세력도 함께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. [[인도 아대륙]]이라는 [[대륙]]의 특성상 문화나 사회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던 남인도가 인도 북부를 중심으로 한 델리 술탄국에 자연스레 합쳐지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다. 무함마드 정복 직후에도 남인도 지방에서는 끊임없는 반란이 일어났고, 결국 무함마드가 1351년 사망하자 그가 정복한 지방들은 모조리 [[바흐마니 술탄국]], [[자운푸르 술탄국]], [[벵골 술탄국]], [[구자라트 술탄국]], [[말와 술탄국]], [[비자야나가르 왕국]], [[메와르]], [[물탄]], [[신드]], [[곤드와나]] 등등 수많은 소왕국들로 떨어져 나갔다. 무함마드 사후 그의 친척인 [[마흐무드 이븐 무함마드]]가 잠시 술탄에 올랐으니 1개월도 되지 않아 쫒겨났다. 이후 무함마드의 사촌인 45세의 [[피루즈 샤 투글루크]]가 술탄에 올랐다. 피루즈는 무함마드에 비해서 훨씬 온건하고 평화주의적인 술탄으로 약 37년간 재위했다. 피루즈 재위기의 델리 술탄국은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굉장히 평화로운 세월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는데, 특기할만한 전쟁이나 대전투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고문을 금지하기도 했다.[* 이 당시 인도의 고문 수법은 대단히 잔혹하기로 유명했다. 뼈를 부러뜨리거나 손발톱 밑에 못을 박는 것은 예사요, 톱으로 사람을 산채로 썰거나 눈을 뽑고 목구멍에 녹인 납을 부어넣은 사례도 많았다.] 그러나 종교적으로는 무함마드만큼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. 힌두교도들에게 부과된 [[지즈야]] 세금은 날로 상승했고 [[시아파]] 등 기타 이슬람 종파들에 대한 탄압도 심해졌다. 또한 이슬람에서 타 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혹형을 가하기도 했다. 무함마드만한 군재가 없었던 피루즈는 무함마드가 정복했던 남인도와 [[벵골]] 지방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용인했고, 벵골 재정복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. 피루즈가 죽기 약 4년 전인 1384년, 델리 술탄국에 [[내전]]이 발발했다. 당시 피루즈가 가장 아끼던 아들 칸 자한 1세는 1368년 사망했고, 칸 자한 1세의 아들인 칸 자한 2세가 술탄의 총애를 한몸에 입었던 아버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[[재상]]이 되어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다. 칸 자한 2세는 점차 욕심이 커져 조부인 피루즈에게 남은 유일한 아들인 [[무함마드 샤 투글루크]]를 제치고 술탄이 되고 싶어했다. 그는 술탄에게 무함마드 샤를 내치고 자신을 후계로 삼을 것을 끈질기게 설득했지만, 정작 피루즈가 택한 것은 칸 자한 2세의 재상직 박탈이었다. 결국 분노한 칸 자한 2세가 군대를 일으키며 내전이 일어났다. 무함마드 샤 역시 1387년에 추방되었고 1년도 되지 않아 피루즈가 사망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